몰랐던 삶과 알고 난 삶, ADHD

내가 혹시 ADHD 가 아닐까? 의심하던 날의 기록

나는 우울증인가 ADHD인가

2년 전, 이혼 이후 밀려왔던 정서적인 문제들을 해결해보고자 발버둥 치던 어느 날,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나는 오늘 나에게 ADHD 라는 이름을 주었다-신지수>

우울증인가, 불안증인가, 그저 예민한 탓인가 평생을 고민하며 살았다.

하지만 ADHD 라는 질환명을 떠올려본 적은 없었다. 관련된 책과 유튜브를 뒤지기 시작했고,

그곳엔 어릴 때부터 그냥 나에게는 당연했던, 내 삶의 모습들이 그대로 있었다.

제 발로 찾아간 정신의학과

감정 조절의 어려움, 충동성, 금전관리의 어려움, 기다리기 못함, 잘 잊어버림, 정리정돈의 어려움 등

모든 내용이 나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 날, 병원을 수소문해서 내 발로 정신의학과를 찾아갔다.

그리고 왜 찾아오셨느냐는 의사선생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제가 99% ADHD라고 확신해요”.

그리고 의심되는 증상들을 쏟아냈다. 그 어떤 병원에서 어떤 환자가 마치 유레카를 외치듯이 “제가 병에 걸린게 확실해요!” 라고 말할까?

해당 병원에는 직접 검사를 할 수 있는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선생님은 나의 어린시절부터의 에피소드를 모두 들으시고, 나의 현 증상들과 상황들을 종합해보아 아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셨다.

하지만 진단은 신중해야 한다며 우울증으로 인한 일시적인 집중력 저하 가능성을 고려해서 일주일만 우울증 약을 처방해 보자고 하셨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약이 맞지 않았다.

이틀정도 약을 먹고는 누군가 나를 침대 매트리스 안으로 그저 찍어 누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 시작됐다.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자살충동, 한없이 무기력하고 힘들기만 한 감정기복도 느껴졌다.

위기감에 약을 중단하고 병원에 다시 갔다. 그제서야 ADHD 약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

에피소드 만으로도 높은 확률로 ADHD 의 가능성이 보이니, 약이 듣는지 확인해보기로 하고 일주일치 약을 받아왔다. 그리고..

약 한알이 나를 구해낸 날

손톱만한 알약 하나

내가 ADHD 가 맞다는 진단을 확실히 받은 상태에서 18mg밖에 안되는 이 작은 알약을 삼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라는 걸, 확실하게 느낀 건 첫 날부터였다.

내 평생 정리라는 건 제대로 해본적이 없고, 청소는 엄청난 능력이 필요한 영역이라 여겼다.

집안 살림은 족히 2년간 누워 자고 일할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을 남겨두는 것 외에 신경쓸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작은 알약은 나에게 그 모든것을 6시간만에 해치우게 해줬다.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아이언맨 수트 입은 기분이야’

눈 앞에 자비스의 화면이 보인다면 이런 기분일까?

어지럽게 널린 물건들과 쓰레기들의 제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남겨야 할지 보였다. 쌓인 설거지로부터 공포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런 거부감도, 저항감도 없이 청소를 해치웠다. 옷장의 옷을 전부 꺼내 안입는 옷을 다 버리고 계절별로 걸어두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이 행위가 내 평생 이렇게 어려웠다니. 이제 내가 그걸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우리집 벽은 내가 충동적으로 칠해버린 페인트 때문에 온통 코랄색이었다.

아침부터 잠들 때 까지 요란한 벽 색깔 때문에 눈이 아팠지만 사람을 부를 돈도, 스스로 칠할 힘도 의욕도 없어 견디고 있었을 뿐. 그런데 그 벽을 이틀만에 다 하얗게 바꿔놓은 것은 나일까 약을 먹인 나일까.

내친 김에 오래된 할머니집같은 장판도 바꿀까 해서 접착식 장판을 주문했고, 혼자서 재단과 붙이기를 반복(절대절대 힘들었던 계산과 반복행동)해서, 일주일도 안되어 우리 집은 새 집이 되었다.

감격. 또 감격. 도파민이 부족한 ADHD에게 감격이라는 감각이 느껴진다는 것도 울컥. 아, 내가 해냈어. 뭔가를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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