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나의 주 증상 모아보기

ADHD 진단을 받고 나서 가장 궁금했던 건, 어디까지가 게으름과 내 성격이고 어디까지가 질환에 의한 증상인지 였다. 책이며 유튜브며 해외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찾고 뒤져서 이런 부분은 ADHD의 증상이었겠구나 싶은 것들을 모아보았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

정확히 말하면 졸린 건 아닌데 몸이 말을 안듣는다고 해야 하나, 아직 꿈속에 있는건지 아침이 밝아온 건 알겠는데 몸을 일으키기가 어렵다. 적어도 내 기억속에선 한 번도 아침에 개운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ADHD 가 있다면 전두엽, 대뇌가 각성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걸릴 수 있어서 원래 아침이 힘들 수 있다고. 단지 나의 게으름이 아니었다니.

시간 관리가 안된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유난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의 평가에 민감한 부분이 더 커서 시간 약속은 잘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근데 알고 보니 그게 잘 지켰다는 개념보다는 늦을까봐 30분 1시간씩 일찍 나간다던가,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킬 수 있었던 것에 가깝더라. 가령 오후 2시에 약속이면 오전 시간에는 그 어떤 것도 하기가 어렵다. 그저 아침 10시인데도 2시까지 가려면 시간이 얼마 안남은 것 같은 불안감과 초조함이 계속 있다.

그렇다 보니 이건 단순히 게으르다기 보단 시간에 대한 감? 이걸 이만큼 하면 어느정도의 시간을 쓰겠군. 이라는 감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딴 걸 하면 시간을 훌렁 넘겨버릴 것만 같은 이상한 불안이 있다. 해외사례에서 이런 글을 봤다. ADHD 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오후 3시의 약속이라고.

감정 조절이 어렵다

이 부분은 충동성이나 조절력 부족으로 흔히 겪는 문제라고 하는데, 스스로는 자세히 원리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유난히 거절감에 민감한 것 같다. 다른 정서적인 경험과 합쳐진 내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ADHD 의 특성상 타인이 갸우뚱할 만한 언행이나 행동을 할 수 있다 보니 은근히 배제당하거나 거절당하거나, 실수를 해서 안좋은 평가를 듣는 일이 많아서 위축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파도를 타는 것처럼 급변하는 감정 상태가 특히 어릴 때는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집안 청소나 정리를 못한다

어릴 때는 방 상태, 어른이 되어서는 살고 있는 집안 전체 상태가 늘 엉망진창이 디폴트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구조화 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데, 늘 대청소를 해보겠다고 하다가 더 엉망이 된다거나, 혹시 몰라 물건을 쟁이는 것도 하나의 성향이라고 하니,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물건이 있지만 언젠가 또 필요해질까봐서 버리지도 못한다. 제발 버리고 싶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되는지 조차 모르겠는 나의 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설거지인데, 개인적으로 설거지는 나에게 엄청 압도적인 테스크처럼 느껴진다. 한번 착수 하려면 어마어마한 결심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거나 기억력이 좋지 않다

요즘은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돌아보니 꽤 많은 걸 잃어버렸다. 손에서 물건을 떨구는 경우도 꽤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나름의 해결책으로 만들었던 게 널찍한 가방을 늘 들고 다니는 것이다. 일단 소지품은 가방에 다 때려넣기. 그러면 적어도 잃어버리지는 않을 수 있다. 그것 하나는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핸드폰을 한 세개 떨구고 잃어버리고 나니.. (알바비 잔뜩 넣은 지갑도 잃어버리고 나니) 이정도의 솔루션은 혼자서도 한 것 같고, 기억력에 관해서는 뭔가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인데, 주의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언제 어디서 누구와 뭘 했는지가 종종 기억이 안나거나 뒤죽박죽이다. 그래서 상대는 기억하는데 나는 기억못하는 중요한 사건이나 이벤트의 경우, 미안해 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는 것도 곤란한 부분 중 하나.

숙제, 과제를 못한다

미루기와 참아내기, 구조화와 우선순위의 문제들이 복합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릴 때 부터 숙제는 안하기로 유명했다. 엄마아빠는 그냥 항복하셨다. 대학때도 과제는 어차피 10프로니까 제껴! 주의였고, 머리아픈 걸 하고싶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공부는 스스로 연구해야 하는 파트가 많아 적응을 못했고, 레포트며 시험이며 다 제끼는 바람에 학사경고를 세번이나 받았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다

갑자기 떠올라 훌쩍 떠나는 건 일상이다. 뭘 하고 싶거나 먹고 싶거나 가고 싶으면 일단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ADHD 의 심각한 미루기와 정 반대된다. 결국 내가 꽃히는 건 절대 미루지 않는다. 아니, 못 미룬다. 당장 해야 하니까. 만족지연의 문제일까. 대출까지 받아서 유럽을 갔다왔으면 말 다했지.

경제 관리가 안된다

그렇다 보니 그 충동적인 매일매일이 쌓이며 돈은 안쌓인다. 돈은 늘 가치에서 후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또 벌면 되지, 라는 안일한 생각과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의 가치를 부풀리는 합리화 때문에 명품백에는 관심이 없지만 몇백만원짜리 교육을 들으러 다니고, 궁금한 건 사서 써봐야 하고, 환경을 바꾼답시고 가구를 바꿔대는 무모함이 통장을 늘 마이너스로 만든다.

머릿속이 늘 꽉 차 있고 시끄럽다

이 느낌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주로 늘 머릿속에 고장난 라디오가 틀어진 것처럼 음악이 재생되는데, 어떤 날은 트로트고 어떤 날은 아이돌, 어떤 날은 클래식, 어떤 날은 광고 비지엠 같은 식이다. 한 곳이 전부 재생되는 건 아니고 특정 마디만 계속 재생된다. 한번 시작되면 자의적으로 끌 수도 없다. 제일 심할 때는 자기 직전과 어설프게 잠이 깬 아침인데, 그럼 다시 자기는 글렀다. 약을 먹었을 때 신기하게 없어졌던 증상 중 하나다. 그와 이어지는 증상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있다는 느낌이 든다.

진득하게 한가지만 앉아서 하기 어렵다

이 글 하나 쓰는데만도 두시간 가까이 걸리는 중이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이트를 구경하다가, 뭘 먹다가, 자료를 찾는답시고 뉴스를 보다가, 손톱을 깎고..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는 것은 종종 일어나는 기적같은 일인가 보다.

미루기 대마왕이다

성인 ADHD 의 미루기, 또 미루기 vs 게으른 완벽주의자

바로 직전에 쓴 글처럼 미루기는 내 삶이라고 느낄 만큼 심하다. 최근 책을 읽고 나서 그게 불안과 만족지연의 문제가 섞여 있기도 하다는 힌트를 알게 되었지만 2%정도 나아진 것 같긴 하다. 지금도 내가 미루고 있는 것은 건강검진 예약과, 풀배터리 검사지 하기, 각종 공과금 내는 거, 쓰레기 분리수거, 집청소 등등 아주 많다.

ADHD 증상에 대한 고찰

이렇게 적어놓고 나니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신기하면서도 대견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그렇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니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2주 뒤에 풀배터리(종합심리검사)를 예약해 두었다. 이왕 시작한 거 정확하게 알고 싶다. 어떤 게 ADHD 증상으로 인한 불편함인지, 공존질환인 우울과 불안 등은 어떤지, 전반적인 나의 정서 문제는 어떤지, 부딫히면서 겪어보고, 알아보고, 나아져 가고 싶다.

이렇게 과정을 써내려가는 이유는 누군가 나처럼 힘든 시간을 이유도 모른 채 보내고 있을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어쩌다 찾아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의 이 모든 불편함도 의미와 이유가 있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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